二分法의 함정에 빠진 한국교회
인터넷을 통하여 ‘봉은사 땅 밟기’라는 해괴한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채 몇 분 안 되는 짧은 영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려 차마 끝까지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우리나라 유수의 사찰인 봉은사에서 손을 높이 쳐들고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었는데, 그들의 앳된 얼굴을 보자니 부끄러움에 더하여 ‘누가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나?’라는 참담함이 가슴에 밀려왔습니다.
다 그들을 잘못 인도한 지도자의 잘못입니다. 성경 말씀을 곡해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우발적인 실수가 아닙니다. 이 사건을 한국교회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진심으로 불교계에 사과했습니까? 앞으로 종교간 화해를 위해 노력하겠습니까?
글쎄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이 사건은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총체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이분법적 사고입니다. 이분법적 사고란 이런 것입니다. 세상에는 적과 동지 둘 중의 하나만이 존재합니다. 기독교가 아닌 모든 종교는 미신이며, 타파의 대상입니다. 타 종교의 신도들은 아무도 구원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인생들입니다. 이렇게 구분하다보니 자칫 잘못 걸리면 異端이요, 사탄이며, 적그리스도라는 딱지가 붙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한국교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무신론자(無神論者)도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도 末路는 지옥입니다. 심지어는 같은 경전을 쓰며, 같은 예수를 믿는 가톨릭도 이단이라고 합니다.
이런 한국교회를 보노라면 중세의 십자군(十字軍)이 연상됩니다. 섬뜩합니다.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빼앗기 위하여 200년간 무려 8번의 침략전쟁을 일으켰으나,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멸하고 말았습니다. 한국교회는 십자군전쟁에서 무엇을 배웁니까? 하나님은 십자군 전쟁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일깨워줍니까? 침탈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신자와 불신자를 가르고, 타 종교를 무시하는 행위를 예수님은 단연코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임진왜란으로 우리나라 강토를 짓밟고 무고한 백성을 죽인 왜군 수령입니다. 그는 독실한 천주교도였는데, 그 당시에는 그런 장군이 일본에 여럿 있었습니다. 그들을 기리시탄 다이묘라고 부릅니다. 고니시의 군기(軍旗)에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습니다. 마치 십자군의 그것처럼. 그는 조선 침략을 성전(聖戰)으로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 침략이 옳았습니까? 하나님의 군기를 높이 쳐든 고니시와 그 병졸들은 하늘나라 가고 무참히 죽어간 우리 국민들은 다 지옥 갔습니까? 유교의 충(忠)을 이념으로 삼아 결사 항전한 조선군과 의병들은 이교도(異敎徒)들인데 그들은 다 어찌되었습니까?
인류는 그런 과오를 더 이상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종교간 상호존중과 이해가 곧 예수님의 뜻입니다.
"이태 전 겨울, 서대문에 있는 다락방에서 베다니 학원이 열리고 있을 때였다. 나는 연사의 초청을 받고 그 자리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대개가 목사의 부인되는 분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강연을 하면서도 이상한 착각에 속으로 갸웃거렸다. 여러 청중 속에 대여섯 사람쯤은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꼭 만난 사람들 같은데, 거기가 어디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주관하던 법회였든지, 아니면 출가 이전에 같은 동네에 살던 분들이었든지. 어디서 본 얼굴들 같은데 도무지 기억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그 얼굴들의 정체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 얼굴들은 실제로 어디서 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내면적인 신앙생활이 밖으로 번져 나옴으로 해서, 기왕에 알았던 사람들로 착각을 일으키게 했던 것이다. 어쩌면 전생에 이웃에서 살던 사촌들이었는지도 모르긴 하지만."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있는 ‘진리는 하나인데’라는 수필의 일부입니다. 이 자리에서 케케묵은 종교다원주의(宗敎多元主義) 논란을 다시 꺼내 들 생각은 없습니다. 불교를 추켜세울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다만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이든 그 종교의 본질은 평화요, 자비요, 겸손입니다. 예수님도 이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고, 죽음으로 그것을 완성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이분법의 함정에서 속히 헤어나야 합니다. 교회 밖에도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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